개요
아일랜드의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로,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같은 해 오웰상(소설 부문), 케리그룹 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휩쓴 작품이다. 작가가 전작 『맡겨진 소녀』 이후 11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소설로, 자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른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눈으로 삶의 중심은 바로 그러한 사소한 것들에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저자 소개
클레어 키건(1968-)은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대학교에서 영국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어서 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아 학부생을 가르쳤고, 더블린트리티칼리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키건은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를 출간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 힐상을 수상했다. 2009년 쓰인 『맡겨진 소녀』는 같은 해 데이비 버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최근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오웰상(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출판사 서평
작가가 전작 『맡겨진 소녀』 이후 11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소설로, 자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른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같은 해 오웰상(소설 부문), 케리그룹 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었으며,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과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오른 이 책은,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의 은밀한 공모를 발견하고 자칫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키건 특유의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문체로 한 인간의 도덕적 동요와 내적 갈등, 실존적 고민을 치밀하게 담아냈다.
목차
- 제1장 크리스마스 전야
- 제2장 크리스마스 이브
- 제3장 크리스마스 아침
- 제4장 크리스마스
- 제5장 새해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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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문학평론가): 『맡겨진 소녀』를 다 읽고 나니 그 빳빳한 양장 커버가 이야기를(특히 그 소중한 결말을)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 소설도 그렇다. ‘키거니언 엔딩’이라고 부르고 싶은 그것의 본질은 무슨 반전 같은 게 아니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감히 기대해도 될까 싶은 일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능성이 서사의 필연성으로 도약하는 지점에서 소설이 끝날 때,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하나를 얻게 된다. 이 작가가 단편 분량의 소설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것에 나는 불만이 없다. 이런 결말 뒤에, 감히, 어떤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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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르포작가): 이 소설은 클레어 키건이 쓴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긴 시다. 날마다 기계적으로 전개되는 일상에 복무하는 한 사람을 멈춰 세우는 힘은 무엇일까. 핀셋으로 뽑아낸 듯 정교한 문장들은 서로 협력하고 조응하다 한 방에 시적인 순간을 탄생시킨다. 그것은 ‘뒤돌아보는 인간’의 탄생이다. ‘가족 인간’이기를 멈추는 선택이다. 나는 단숨에 읽고 앞으로 가서 다시 읽었다. 타인에 대한 숙고가 자기 회복에 이르는 점층 구조의 신비에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동요하지 않음이라는 견고한 세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광물처럼 빛을 내는 삶의 진실을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다.
옮긴이의 글
- 저자가 번역에 신경을 쓰고 세심하게 도움을 주려 하는 것이 무척 고마웠다. 그런 한편 이 짧은 소설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드러내지 않고 암시하고자 한 부분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고 빙산의 일각 같은 이 글을 과연 어떻게 옮겨야 할지 난감했다. 이 짧은 소설은 차라리 시였고, 언어의 구조는 눈 결정처럼 섬세했다. 잘못 건드리면 무너지고 녹아내릴 것 같았다. 클레어 키건은 무수한 의미를 압축해 언어의 표면 안으로 감추고 말할 듯 말 듯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고 미묘하게 암시한다. 두 번 읽어야 알 수 있는 것들, 아니 세 번, 네 번 읽었을 때야 눈에 들어온 것들도 있었다.
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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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_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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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_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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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 학교 가는 날이었는데도 그날 밤에는 아이들이 꽤 늦게까지 깨어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실라는 리베나 농축액을 섞어 주스를 한 주전자 만들었고 펄롱은 레이번 스토브 앞에 자리 잡고서 소다빵 조각을 긴 포크에 꽂아 구웠다. 굽고 나면 아이들이 버터를 바르고 마마이트나 레몬 커드를 얹었다. 펄롱은 자기 빵을 까맣게 태워버리고는 잘 지켜보지 않고 불에 너무 가까이 갖다 댄 자기 탓이라며 그냥 먹었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었다. 마치 이런 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_35쪽